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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wddink 
  [잡담] 바보같은 작전

종료 4.0초전. 점수는 108-110. 그리고 마지막 공격.
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전타임을 요청한다.
하프코트에서 공격을 시작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보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으나
막상 벤치에 들어가니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른다.
모두들 지칠대로 지쳤다.
숨이 턱까지 차 있어 작전 모의는 고사하고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준결승 5차전. 상대는 지난해 우승팀.
당시 멤버들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올시즌에도 참가했다.
여태껏 농구 시합 수백 수천 번 해봤지만
이렇게 플레이하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겨준 팀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안된다 해서, 이길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고 해서
곱게 GG치고 집에 갈 녀석은 우리 팀에 없다.
12명 모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체력, 감각, 집중력, 투지 등등....
그 와중에 팀원 2명의 코뼈가 내려 앉았고, 1명은 무릎 십자인대가 나갔으며,
1명은 뇌진탕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간신히 의식을 찾았다.
이렇듯 혼을 다한 플레이로 끈질기게 따라붙어 여기 5차전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온 것이다.




3점이면 역전승, 2점이면 연장전.
그러나 그 이상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없다.
이 와중에도 귀중한 작전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고....
이윽고 휘슬이 울리면서 심판이 작전시간 종료를 알린다.
동시에 팀원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하프코트에서의 아웃 오브 바운드로 마지막 공격이 시작된다.
앤드라인 밖에서 볼을 준 직후 나는 오른쪽 사이드 3점슛 라인을 향해 무작정 달려간다.
나한테서 볼을 받은 녀석은 중앙으로 돌파하는 척하면서 나한테 다시 볼을 준다.
순간 나머지 4명의 팀원들이 한쪽으로 몰리며 아이솔레이션을 걸어준다.
이제 1대1. 남은 시간은 약 3초.




우리 팀은 시합 종반
공격 한 번, 슛 한 번으로 승패가 결정될 순간에 이르면
그 날 가장 감각이 좋고 컨디션 펄펄 나는 녀석에게
아이솔레이션을 걸어줘 마지막 승부를 거는 습관이 있다.  
한 마디로 5명이 피땀 흘리며 싸워온 시합의 종지부를
무식하게 1명에게 다 걸어버리는 올인 전략인 것이다.
우리끼리는 이걸 "바보같은 작전"이라 부른다.




이제 1대1. 남은 시간은 약 3초.
내 친구들이 코뼈를 부러뜨려 가며, 십자 인대가 끊어져 가며,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가며 여기까지 이어준 5차전이다.
그들이 모든 걸 걸고 혼을 다해 따라붙어 여기까지 이어준 마지막 2점차다.
이긴다. 반드시 이길 테다.




패스를 받자마자 3점슛을 시도한다.
그러나 내 매치업이 전력을 다해 점프해 오른다.
너무 높다. 블록슛 당할 것 같다. 이대로 무너지는가.
그러나 순간 내가 아직 발을 코트에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됐다. 빈틈이 생겼다. 마지막 기회다.
매치업을 제치고 림을 향해 돌파해 들어간다. 뛰어오른다.
그 때 아이솔레이션 때문에 멀찍이서 묶여 있던 상대팀 센터가 달려온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이대로 간다.
녀석의 블로킹을 피해 몸을 뒤로 젖히면서 페이드 어웨이를 시도한다.
볼이 림에 닿은 순간 종료 부저가 울린다. 볼이 림을 타고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리고 볼이 림 위에 멈춰서는가 싶더니 이내 밖으로 떨어진다.
시합 종료. 108-110 패. 준결승 종합 2승 3패.
나 때문에, 이 변변치 못한 나 때문에 팀의 결승진출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난 농구공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라진 나를 걱정한 녀석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녀석들이 내 방까지 찾아와 문을 두들겼지만 난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나를 끝까지 믿고 맡겨준 녀석들의 얼굴을
만신창이가 돼가며 사력을 다한 녀석들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고 현충일 연휴 때 부산으로 도망와 버렸다.




그 때 내가 좀 더 침착하게 던졌다면....
블로킹 온다고 겁먹지 않고 좀 더 부드럽게 스냅을 썼다면....
아니, 그 때 좀 더 넓게 봤다면....
그래서 노마크였던 센터에게 패스했다면....




머리 속은 온통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매일같이 그 마지막 4초 꿈을 꾸며 몸서리친다.




난 다시 농구공을 잡을 수 있을까....


* 해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30 01:01)

05-06-06 16:13:03
  루핑     05-06-06  
 아............진짜 아쉬웠겠어요ㅠ_ㅠ 힘내삼 딩크사마ㅠ_ㅠ  
  phoenix     05-06-07  
 아마... 점수차이는 2점차 남은 시간은 몇 초 안남고...
결국 에이스라는 숙명아래 직접 골밑까지 달려가면서 이정환의 파울을 유도하여 바스켓 카운터를 노렸으나 실패한 윤대협의 심정일까요?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어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 아니었습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승리에 대한 집착도 중요하지만, 경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것이 더 많이 필요하고, 더 중요하잖아요.

그 명승부 꼭 보고 싶네요~!  
  연*^^*     05-06-07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은유이거나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sunnyway     05-06-07  
 저도 소설인줄.. ^^;;

그 '바보같은 작전'이라는 것이 시합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슛을 그날 경기에서 가장 슛 감각이
좋은 선수에게 맡기는 거라고 했는데, 이건 보통 일반적인 농구경기에서도 그러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
보통 마지막 슛은 가장 믿음직한 선수나 그날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하죠.

그러면 많은 경기를 하다보면 그 날 슛 감각이 좋은 선수가 휴딩크님말고 다른 선수도 될 수도 있겠네요.
만약 그 선수가 휴딩크님과 같은 순간에서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선수에게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고 싶으세요?
그리고, 그 선수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세요?

사람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남의 일에는 굉장히 합리적인 조언을 하다가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감정적인 대응만 하게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


그리고, 농담인데요..
보통은 남자분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하는데,
휴딩크님의 경우에는 군대에서 농구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a  
  아제™     05-06-07  
 전 픽션과 팩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_-;; \

음, 글쎄요...... 뭔가 가슴 한구석이 콱! 막히는 듯한 느낌이어서 무슨 말을 하면...... "쟤 뭔 소리 하냐? ㅡㅡ;;"라고 생각하실까봐 말 안할래요~!^^  
  kid     05-08-05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종료 직전 역전의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 놓고..

상대 센터에게 패스했던.. SD 의 누구 누구를 기억하세요.. ^^

경기는 계속 되어야 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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