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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梨花에 月白하고-속 동강서정(續 東彊西征)<2>
梨花에 月白하고-속 동강서정(續 東彊西征)<2>

4. 비원(悲願)과 다가오는 위협

  불나주 변길섭은 주먹을 꾹 쥐고 문 밖에 서 있었다.
  서정의 방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방의 주인은 금침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나무토막을 입에 물어 아픔을 끊어내고 있을 터였다. 아마도 그 아픔에 바스라지는 것은 이빨만이 아니리라.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길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나도현과의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서정은 거의 말 위에서 기절한 상태였다. 식은 땀은 그의 전신을 무겁게 만들었으며 눈의 초점은 자꾸만 흐려져 갔다. 불안한 낌새를 눈치챈 길섭이 슬적 옆에 다가가 손으로 허리를 받쳐주어도 감지하지 못할만큼 서정은 이미 가사(假死)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린과 얼노우가 축하주를 제의했지만 길섭 자신이 앞질러 거절의사를 밝히고 서둘러 서정을 방의 침대에 눕히게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열이 비등했고 심지어는 장독(掌毒)오른 사람처럼 전신에 푸른 반점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화급히 불러온 의원도 이 정체모를 사반(邪斑)의 정체를 좀처럼 짚어내질 못하고 그저 응급처리로 해열이나 가능할 정도였다.
길섭은 다시 한번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거이타부의 총사령관인 髓饑(수기-골수가 굶주릴 정도로 악명을 떨치는) 酊首捻(정수염-술취한 머리로 막대기를 비틀다)의 거처를 쏘아보고 있었다. 피오애수로 떠난 생마린(生馬璘-옥빛이 생생한 말처럼 뛰노는) 이운재의 경우를 보더라도 무언가 흑막이 있는 일이었다.
제길......
솟아오르는 심화(心火) 뒤켠으로 재균 선사를 비롯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올라 길섭은 쓴 입맛을 다시며 애꿏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움직이지 않는 벽이 어인 일로 이리 요동을 치는가?”
길섭의 뒤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담담한, 하지만 조금만 마음이 열려있으면 이내 그 담담함 속에서 끝 모르게 가지를 벋고 구름을 틔우는 상상의 별천지를 예감하게 하는 목소리. 동강, 강민이었다.
“돌아왔군.....”
길섭은 동강의 조금은 핼쓱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 문파의 자긍심이자 제일인자로 무림을 재패하고 거이타부라는 국가방위 조직의 최고봉에 입사한 사람. 그러나 육신의 출세는 이내 그의 최대 무기였던 종잡을 수 없었던 신이(神異)한 정신력을 깎아먹었음인가. 거이타부 입봉이후 첫 대회였던 이번 질로토 무림대회에서 그는 우부 최연성과 동료이자 부루토수 문하 양대영웅인 서정 박정석에게 연패하며 2연패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잇다른 도얼에서의 2연패. 그는 이제 내일 모레 4강 쟁패전에서 전무후무한 격전사를 남기며 연생마인을 봉인시킨 주라이 박성준과 서정과의 결승 경기가 끝나면 찰린저로 면벽수도를 떠나야 할 처지였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섭은 서정과의 경기에서 패배를 선언한 후 의아할 정도로 웃음을 머금은 동강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얼굴. 실력이 딸려서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짓는 쓴웃음이 아닌, 무언가 웃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가슴을 헤집어놓는 듯한 번민이 깃든 웃음이었다. 마치 시합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동강의 그 웃음이 그때부터 길섭의 마음 한 구석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서정은 축하주 받는 중인가....조용한 것을 보니.....”
조용한 침묵에 젖은 서정의 방문을 바라보며 동강이 낮게 중얼거렸다.
길섭은 마침내 결심했다.
  “이보게 동강, 자네에게 알려줄 것이 있네.....”

이고도의 밤은 낮의 한적함에 고적함을 가득 보탠다. 그 농밀한 정적은 별빛을 덧칠하고 달빛을 더욱 보드랍게 만들어 외로운 섬을 뒤덮은 질경이 풀들을 위무하고 용케도 이런 곳에 정을 붙여 머물고 있는 두 여인, 벽소군과 지현츠자의 마음에 한땀 한땀 웃음과 기쁨의 수를 놓는다.
벽소군은 장지문을 열어놓고 인가의 빛이 가리지 않아 더욱 짙게 뒤덮는 달빛을 바라보고, 마치 무엇인가를 빌고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하늘에 떠있는 별이며 달을 눈에 가득 담고 있다.
곁에서 한참 화선지에 난을 치고 있던 지현 츠자가 벽소군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내일 저보고 옹감네 가시란 이유는 서정 정석님 때문이겠지요?”
드물게 벽소군의 백설같은 턱선에 꿈틀 파문이 인다. 이마에 반듯이 얹혀있던 아미(蛾眉)역시 요동을 친다.
“그리 보고 싶으시면 그리 마음에 맺히셨으면 직접 가보심이 낫지 않을까요?”
“......”
벽소군은 이내 자신의 평정을 찾고 강하게 내쏘던 지현에게 향한 시선마저 거두어 들인다.

직접 찾아간다면....그래 직접 찾아갈 수만 있다면...벌써 수백만년을 찾아갔을 것이야. 어지간한 악업이나 인과응보만 아니라면, 그깟 어깨좀 결리게 하고 다리 좀 부어오르게 하는 원죄였다면 손에 피를 묻히고서라도 그에게 찾아갔을 것이야, 설령 그의 노한 검날에 내 심장이 주루룩 꿰어 하늘 높이 치켜올라지며 피를 쏟더라도 그것으로 끝이라면 내 함뿍 웃으며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야.
하지만.....
이젠 자신에게 인간이 느낄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선은 사라진 줄 알고 있던 벽소군이었다.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그저 놓아버리자는 마음으로 기운 날, 모든 마음의 떨림을 심장에서 꺼내 바닥에 패대기치고 훌쩍 뒤돌아선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무지 한 사람의 이름만 연결이 되면 이내 지옥 밑바닥 무간이었다.
또 다시 벽소군의 뺨을 푸른 눈물이 뒤덮기 시작했다.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고 벽소군은 쏟아지는 눈물탓에 더욱 시리게 파고드는 달빛을 물리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며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그녀의 몸에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울고 또 울고 혼절했다가 깨어나면 또 울고 하면서 다 뽑아버린 눈물인줄 알았는데....모질기만 한 것은 목숨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느 틈에 그녀 주변의 방바닥에 작은 호수가 생겼다가 이내 강이 되어 흐르고 다시 호수로 떨어져나가곤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흉사(凶事)람....벽소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벽소군의 온 신경이 팽팽하게 죄어졌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내리는 화살무더기가 지붕과 벽, 그리고 방안까지 날아들어와 등잔불을 박살내는 것과 벽소군이 지현을 안고 문 밖으로 날아가듯 뛰쳐나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
벽소군은 자신의 근처까지 쫒아와 떨어진 화살을 집어들어 살피고는 잠깐 이맛살을 찌푸린다. 화살촉 끝에 발려있는 녹색의 액체. 필경 이래도애토(痢來倒埃土-이질에 걸려 넘어지듯 흙먼지로 화하는 독)의 독약임이 분명했다.
목적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지자 벽소군의 자태에는 어느샌가 진한 피냄새가 풍겨나기 시작했다. 백설같이 순백하게 가라앉았던 평온한 표정에는 혈향을 맡은 악귀의 가가대소가 어려들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비원으로 가득했던 눈동자 역시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그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겁하게 숨지들 말고 나오시오!”
이고도의 밤하늘이 쩌렁, 울릴 정도로 오연하고 힘있는 벽력일성이 벽소군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그리고 어느틈엔가 그녀의 손에서 푸르른 살기를 내뿜고 있는 장검이 빛을 발한다.
  “무공을 잃었다고 생각했더니....여전히 사나운 암범이군.....”
  여기저기서 발검한 복면장정들이 나타난다. 스무 명 남짓한 그들의 안광은 피에 굶주린 승냥이들처럼 타오르고 있다. 무리 가운데서 유일하게 복면을 하지 않은 달빛을 받아 더욱 번득이는 갑옷으로 무장한 자가 한걸음 앞으로 다가와 내뱉는다.
“날 잊지는 않았겠지......혈마향(血麻香)”
벽소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녀의 뺨으로 한줄기 땀이 흘러내린다.
“혈마향은 죽었소.....지금은 벽소군이지......”
길게 기른 머리로 한쪽 눈가를 가린 사내의 입가엔 비린내 가득한 웃음기가 고여있다. 갑작스런 기습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지현이 사내를 알아보고는 경악하며 소리지른다.
“당신은....변태저구....성...준....묵......”
“성준무라니까!!!......묵사발 되고 싶나!!!!”
“성질머리는 여전하군....변태저구......”
벽소군이 드물게 웃음을 발한다. 그러나 비웃음과 증오가 빚어낸 소름끼치는 괴소(怪笑)다.
“당신이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뜻밖이군.....우리에겐 주고 받을 빚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건 네 생각이다!!!”
성준무는 번들거리는 눈가에 살기를 내뿜으며 소리친다.
“네 목숨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얘들아 쳐라!!!!!”
소리없이, 하지만 마치 날아오르듯 스무 명의 자객들이 칼날을 번득이며 벽소군에게 다가온다. 잠깐, 그녀의 입가에 한숨이 피어오른다.
“가엾은 것들. 부디 나를 원망하지 말기를.....”
미안해요 서정.......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조였지만....이리 깨어지게 되는군요. 차가운 안광과는 달리 그녀의 마음 속에서 가녀린 봄 꽃 한송이 피지도 못하고 지는 소리, 아프게 울린다.

날 사랑해?
사랑해.
얼만큼 사랑하는데.....
세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애게게...겨우?
거기에 너를 영원히 살게 해주고 싶어
정말?
그럼. 넌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해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고마워.

“....깨어났는가....”
천천히 흐릿하던 눈앞이 밝아지면서 벽소군의 모습 대신 동강과 길섭의 모습을 보며 서정은 저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웃는다. 무심코 이마에 손을 댄 서정, 흠뻑 식은땀에 젖은 자신의 몸을 느끼고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
지옥의 낙인에 데인듯한 고통이 그를 덮친다. 목에서 등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이 지네처럼 능글맞으면서도 전갈처럼 지독한 이 고통. 자신도 모르게 서정의 입에서 독한 신음성이 터져나온다.
“누워있게....”
동강이 땀에 젖은 서정의 어깨를 잡아 다시 자리에 눕힌다. 자리에 누워도 여전히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이 고통만 없애준다면.....눈을 뜨고 있을 때도 눈을 감고 있을때도 언제나 내 몸에서 꿈틀거리는 이 악충만 없애준다면.
서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동강의 핼쓱하지만 애써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과 입술 한쪽을 꾹 깨물고 주먹을 쥐고 있는 길섭의 얼굴이 다시 눈에 밟힌다.
“정말 지독한 사람이네 당신은....”
동강이 정말 정나미 떨어진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동강의 말뜻을 알면서도 서정은 짐짓 모른체 하며 애써 웃음을 짓는다.
“자네 좋아라 하는 모습은 죽어도 보기 싫더라구...”
“아니...이젠 아주 나를 밴댕이 소갈딱지로 만드는구만....”
어이없다는 듯 동강이 피식 웃음을 베어문다. 서정도 여전히 등골을 파먹는 듯한 고통에 슬몃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억지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거둔 동강, 복잡한 시선으로 서정을 바라본다.
“더 이상 무의미한 고생을 하지 말게.....이건 승부욕이나 무사의  명예를 떠난 문제네.....”
“……”
“자네 목숨이 걸려있는 문제야.”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길섭이 완연히 감정이 배어든 목소리로 입을 연다, 길섭의 말에는 서정도 적잖게 놀라는 기색을 보인다.
“그래, 그래서 동강이나 길섭,,,자네들은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나?”
서정의 반문에 이번엔 동강과 길섭이 입을 닫는다. 열패감이 둘의 얼굴에 진하게 떠오르고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야 한다고 하지.....그러나 지금 내겐 차선책도 사치네.....최악의 방법이라지만 내가 고를 수 있는 패는 그것 하나밖에 없으니.....”
“방법은 있네.....”
동강이 입을 연다. 그의 눈이 모처럼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다.
“결승전을 포기하고 거이타부를 떠나는 걸세……그리고...”
“그리고는.....”
서정이 형형한 안광으로 동강을 바라본다. 잠시 마른입술을 축인 동강이 천천히 입을 연다.
“벽소군 낭자와....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으로 가게....그곳이라면....혹 자네의 지금 중병을 고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네...”
동강의 입에서 벽소군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서정보다도 뒤에서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길섭의 얼굴이 먼저 흙빛으로 변한다. 잠시 동강의 말을 귀에서 놓친 듯한 서정역시 멍한 표정으로 동강을 바라보다 이내 동강이 꺼낸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
“나와 그녀가 떠나면, 이곳을 떠나 세사와 인연을 끊어버리면....”
“……”
“자네는 살 수 있겠나? 벽소군이 없어도 살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네.”
동강의 이마에도 땀이 번지기 시작한다. 서정은 잠시 굳은 표정으로 동강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보인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면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거네....”
“소중한 하나를 잃는 것보단 차라리 둘 다를 잃는게 나을때도 있지.”
동강이 입을 연다. 하지만 그것은 서정에게 들으라는 말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듯도 싶다.
“내가 싫다면....”
“...난....머지 않아... 자네 송장을 치워야 할 터이고  동시에 벽소군 낭자에게도 온갖 저주를 받겠지....솔직히 가장 두려운 것이 그것이네......벽소군 낭자의 증오에 찬 시선을, 그 얼음같은 차디찬 냉소를 평생 머리 속에 이고 가슴속에 떨어뜨려놓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럼....자네가 벽소군을 가지면 되지 않나?”
동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한다. 그의 손이 길섭이 말릴틈도 없이 서정의 얼굴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열이 심하군....우선 쉬게....”
서정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잠시 열을 재던 동강 완연하게 힘이 빠진 목소리로 겨우 말하고는 일어나 약간은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간다.
동강의 뒷모습을 눈으로 전송한 길섭은 동강의 모습이 사라지자 서정에게 쏘아뱉듯 말한다.
“도대체 무슨 삼칠일 아이 같은 생고집인가.....이대로 있다간 자넨 죽어....!”
“죽는다면.....”
서정은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며 말한다.
“죽는다면....최소한 이렇게 헤멜 일들은 서로에겐 없겠지.”
“……”
길섭은 서정의 평온하기조차 한 얼굴을 보며 말을 잃는다. 벽창호, 허벅지보다도 얇은 머리를 가진 놈, 꽉막힌 사거리 같은 놈, 같은 욕설이 길섭의 입가를 맴돌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얼마나 남았을까?”
“……”
“부탁이 있네.....”
“말해보게....”
“결승까지는 나를 살게 해달라고 정 대장에게 말씀하시게....만일 우승한다면.....”
서정의 눈에서 번쩍 빛이 터져나온다.
“그땐 자네나 동강 뜻을 따르겠네......”
“난.....자네 관이나 알아보겠네.....”
길섭의 얼굴이 노기로 달아오른다. 또 그 짓을 당하겠다는 것인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길섭 역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길섭이 빠져나간 자리를 무심히 바라보던 서정은 다시 천정으로 눈길을 옮긴다. 다시금 그의 척추를 마디마디 토막내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 그의 전선을 파고들고 있었다. 서정은 이를 악물며 그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습관처럼 이를 악다물고 눈을 질끈 감은 그의 망막에 벽소군의 얼굴이 어리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서 바지런히 물 주어 키운 여자. 이가 부서져라 앙다물아야 할 고통이 있을 때 그녀를 떠올리면 조금이라도 이를 덜 악다물 수 있었다.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았고, 뜀박질을 할 때도 뒤에 처져 있다가 그녀를 생각하면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 지금도 가장 필요한 것은 그녀, 벽소군이었다. 그녀만 있으면,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녀의 손을 만질 수 있다면....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가 베갯잎을 물어뜯듯이 질끈 물어 비명을 삼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서정의 방은 황소울음같은 서정의 통곡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길섭은 문 앞에서 동강은 복도 맨 끝에서 등을 돌린채 언제까지고 서정의 울음소리를 들으려는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번 터진 서정의 통곡은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았다.

5. 너를 만나면 이렇게 좋은데

“역시.....피에...굶주린....마녀는....어쩔 수 없....없는...것인가.....”
복부에 치명상을 입은 성준무는 칼을 떨어뜨리고 상처부위를 손으로 만지며 비틀거린다. 벽소군은 다시금 얼음장같은 시선으로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성준무와 주변에 이미 고기덩어리로 화한 그의 부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츠자는 나무 위에서 -0-한 표정으로 불과 한 두 합 사이에 끝난 이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목도하고 있었다.
“누가....시켰더냐....”
벽소군이 억양이 전혀 배어들지 않은 목소리로 성준무에게 질문한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성준무는 적을 향한 적의와 조소를 멈추지 않는다.
“너 같은 사냥개는 스스로 사냥할 수 없는 법....너에게 썩은 고기를 주어 유혹한 이가 있을 것이다. 누구더냐.....”
“주인을 배신하는 사냥개를 본 적 있느냐....”
“음...-_-;;;; 내가 잘못 말했다...넌 하이에나다.....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의 본성도 잊고 인간에게 빌붙어 살려는 존심도 없는 하이에나....널 이렇게 만든 자를 대라...그러면....편히 재워주마.... ”
“어서 죽여라!”
“사가지(邪假只-다만 사악하고 거짓으로 뭉친)운영(雲影) 김종아가 시켰느냐?”
“내가 말할 리가 없지 않은가!!!”
휙. 한번 바람이 인다. 그리고 성준무의 혼이 떠난 육신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무너진다.
“필요 없어하는 목숨이니 내가 가져가마.”
삽시간에 사방은 피냄새로 가득찬다. 모처럼의 습기를 맞아 즐거워하며 빨아들이려던 질경이들도 몸서리를 치는 듯 죽어간 자들이 흘리는 피는 땅으로, 풀잎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그대로 짙은 피냄새를 풍기며 굳어간다.
묘하게도 스무 명이 넘는 이의 목숨을 거두어간 벽소군에게는 피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검을 다시 칼집에 납검한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주변의 참상을 바라보다 지현이 올라가 있는 나무로 다가온다. 그리고 잔뜩 얼어있는 지현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가볍게 웃음을 머금으며 말한다.
“이제 이곳에도 더 이상 머물 수 없을 듯 하구나.....내일 하루는 옹감네에서 머물기로 하자.....”
달이 반짝, 산고개 너머로 모습을 숨긴다.

“무어라!!!!!”
거이타부 수장 정수염은 들고 있던 술잔을 동강을 향해 내던진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 송병석 장군에게 맞는다(기절해 질질 끌려간다;;;;;).
동강은 흔들림 없이 정수염을 바라본다. 무릎을 꿇고 복종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동강이지만 얼핏 보기에는 상석에 있는 정수염에게 동강이 무언의 항의를 벌이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
정수염의 노기에 볼다구 조용호는 사색이 되어 몸을 벌벌 떨고 있다. 애써 평안을 가장하려는 얼노우 홍진호와 마린 김정민의 손 역시 미미하게나마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면 서정 일신을 위해 우리 거이타부의 명예를 실추시키란 말이더냐!”
동강은 열을 올리며 달아오르는 정수염의 모습에 내심 혀를 끌끌 찼다. 서로 생각을 하는 지점이 반대에 놓여있었다. 동강의 부정의 출발에 정수염의 긍정의 시작이 놓여있었다.
한낱 일시적인 명예를 위해 서정의 몸을 상케하고,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안된다, 라는 동강의 논리와 한 사람의 안위를 위해 국가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거이타부의 명예를 시합기권이라는 것으로 더럽힐 수 없다, 라는 정수염의 논리는 애초에 어떤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동강은 새삼 자신의 새로운 처지를 통감했다. 조규남 장문인과 어느틈에 수마지오 문파의 중견으로 성장한 서지훈 박태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약조해 주십시오.....”
“뭐냐....”
“오늘부터 결승때까지 서정의 음식 섭생과 약 복용, 그리고 기공수련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결국 동강으로서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초장부터 던져야 하는 도박에 모든 걸 맡겨야 했다. 그저, 당신이 벌인 일을 나는 알고 있다, 라는 모종의 압박으로 작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정수염은 한껏 눈썹을 찌푸리며 마뜩찮은 표정으로 동강을 바라보았다. 거이타부에서 잠깐이라도 몸담았던 보창 이윤열이나 린투토래인(燐鬪討來人-도깨비불처럼 다가와 싸우고 토벌하는) 임성춘과는 또 다른 강단이 있는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좋다...네가 양보했으니 나도 양보해야지....”
의외로 선선히 응낙하는 정수염. 그러나 동강의 굳은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자꾸만 저 선선한 허락 뒤에는 무언가 불손한 계산이나 음모가 숨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동강은 일어나 정수염과 동석한 장수들에게 일일이 예를 표한 후 자리를 물러난다. 물러나는 동강의 뒤에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정수염의 입술이 실룩거리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그만둔다.

서정의 곁에는 변길섭이 특유의 무표정한 -_-신공만으로 더운 여름 여기저기서 덤벼드는 파리 모기들을 박멸하고 있었다(뿌릴 땐 홈-키파;;;;;간접광고였습니다-작자 주;;;;).
“서정은 좀 어떤가”
“그저 그래.”
그리고 한참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정의 땀에 젖은, 꿈에서도 무슨 꿈을 꾸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마치 먼저 입을 열면 내기에라도 지는 듯이 처절하게.

불을 밝히고 독경 중이던 재균 선사는 귓가에 잡혀드는 미미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외부의 침입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침입자에게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도둑인가....하긴 청년 실업자가 백만을 헤아리는 지금, 치안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지. 하며, 잠깐 긴장을 푼 사이.
“스님....저....벽소군입니다.”
어느틈엔가 문 밖에서 벽소군의 음성이 건너온다, 깜딱 놀란 재균 선사,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어 입을 연다.
“들어오시게.”
문이 열리고 벽소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년 만인가. 벽소군과의 마지막 만남을 회상하다 재균 선사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린다. 어디선가 독하고 역한 피냄새가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살생을 저지르고 경황이 없어 목욕재계하지 못하고 급히 옴을 용서하소서.”
재균 선사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챈 벽소군이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한다. 재균 선사는 가만히 경의 한구절을 낮게 읆조린다. 비명에 간 원귀들을 달래는 진언을.
“그래...평생 다시는 발을 디딜 것 같지 않은 나를 다시 찾은 이유가 있을터인즉....”
재균 선사의 말에 벽소군이 얼굴을 들어 재균 선사를 바라본다. 한때 빙옥(氷玉)이라 불리던 서늘한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다만 재균 선사는 전에 없이 흔들림의 낙폭이 큰 그녀의 눈동자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서라.....”
“……?”
“네 망집은 네가 지고 가야 하는 것.....네가 싫다고 던져버리면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짊어지고 가야한다....”
“저에게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요”
감정이 배어들어 울먹임에 가까운 벽소군의 읍소에 재균 선사는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눈 딱 감고 둘을 보냈어야 했던가. 막 스물 열 아홉의 나이로 피눈물을 뿌리며 자신의 바지춤을 붙잡던 벽소군의 얼굴과 대도량에서 오체투지 이만번을 하면서 이마가 깨지고 무릎이 까진,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눈물을 그치지 않던 서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망집이겠지. 너에게 죄라면 무슨 죄가 있겠나....태생이 죄겠지....너에게 주어진 천분이 죄겠지....그리고 그 천분을 어리석게도 알아버린 세상의 눈이 죄겠지....
“그러나 너에게 행한 악업이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음은 알아주길 바란다.”
“소녀....선사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내,,,안다.....하지만 어쩌랴.....그게 부처님이 법륜 굴리는 세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어긋남임을, 그리고 그 어긋남을 지렛대 삼아 성불해야 하거늘, 인간들의 미욱함은 그리 어리석음을 번져나갈 뿐이지.”
“선사님.....서정....점석이가 위험하옵니다.”
“……”
알고 있었다, 재균 선사도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현이와 4강 쟁패를 벌일 때 서정의 얼굴을 보고 이미 그도 알아버린 후였다. 전신을 뒤덮는 사색과 악기를 겨우 환각제로나 쓰일 미약으로 미봉하고 있으니.
“그러나 이미 서정은 우리 문하가 아니다.....거이타부에 매인 몸....그곳의 처분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저도 알고 있사옵니다....”
“……”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재균 선사는 진저리를 치며 벽소군을 바라보았다. 벽소군의 눈가에 앞서 자객들을 참할 때의 피비린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저는 이곳 대광사에 적을 두고 있사옵니다.”
“그래...그렇지....아직 36살수계의 일원으로 등재되어 있지.....”
“저를 파문시켜 주시옵소서”
“……!”
“그래야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제 신상에서 그칠 뿐 이곳 대광사까지는 불똥이 튀지 않게 되옵니다. 제가 대광사와 선사님을 향해 행하는 마지막 보시라고 생각해주시고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파문이라면...그에 합당한 죄악을 저질러야 가능한 법이다.”
“저에겐 아기가 있습니다.”
“!”
고개를 숙인 벽소군의 앞으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서...서정의 아이더냐.....?”
“……”
재균 선사는 아찔해지는 머리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래서였구나, 이따금 서정이 벽소군 네가 울며 돌아보며 몇걸음 올라서다 곁에 서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이마 기대고 한참을 울고 또 올라다가 다른 나무에 기대어 울고 하면서 한식경이면 올라가는 언덕길 한나절을 걸려 넘어선 그 언덕을 가끔 넋놓고 바라보던 이유가. 어쩌다 젖도 못 뗀 아이들 보면 눈에 못넣어 그렇게 애달복달하던 이유가. 다 있었구나 있었어,
재균 선사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알았다.....지금 이 순간부터 대광사 36살부계 혈마향 벽소군은 파문되었다. 이제 너는 살인에 대한 면책특권도 없으며 저지른 범죄행위는 민간인법에 의거 처벌받는다. 또한 이후 우리 대광사는 일체 너와의 관계를 부정할 것이며 너와 관련된 모든 자료는 이 순간부터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파문당한 자가 경내에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썩 물러가거라.”
벽소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균 선사에게 재배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난다. 막 문을 열고 나서려는 벽소군의 등에 대고
“지경(벽소군의 속명)아..... 행복하게 잘 살아라.”
재균 선사의 낮지만 정감있는 목소리가 벽소군의 걸음을 무디게 한다.
“서...선사님도 꼭 성...성불하시기를....기원하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재균 선사는 가만 사라지는 그림자에 대고 합장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깐 와 그랐노?”
“뭐가?”
“니 입에서 백소군이 이야기 나올 때 내 얼마나 시껍먹었는지 아나.”
“진심이었다.”
“내도 니가 알랑방구로 그딴 이야기 할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
서정은 모처럼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동강과 길섭이 머리맡을 딱 지키면서 서정에게 들어가는 음식물이며 탕재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궁중에서 수라상궁 한상궁을 긴급 섭외, 천재 소녀 장금이와 함께 성심으로 만든 음식들을 맛나게 먹고 모처럼 기분이 좋은 듯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사투리 섞인 잡담을 나눌 정도였다,
처음 들어가는 탕재에 미약을 넣었던 정수염도  탕재에 은숟갈을 담가보고 색이 변한 것을 본 길섭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탕재를 달인 하인들을 들었다 놓았다 열 다섯 번을 하는 것을 보고는 일단 포기한 듯 싶었다.
그러나 무슨 예감이었을까. 서정은 좀처럼 털어놓지 않던 자신의 과거지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광사에 들어갔을 때 사매로, 그리고 검술담당으로 자신을 죽어라 죽도로 두들겨패던 벽소군과의 인연의 시작을....그리고 구가구락 대회때 첫 출전했지만 패하고 돌아와 담장 뒷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던 사매의 손에서 처음 여자를 느꼈다는 것을. 더 나아가 사매가 어린 시절 그렇게 마음에 못 넣어 안달을 하던 지경이라는 소녀였음을 알면서 운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나 무언가 한 두가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동강은 눈치챘다. 그러나 굳이 따져 묻고 싶지는 않았다.
서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강 역시 벽소군과의 인연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재야의 무사로써 말이 좋아 수행이지 걸사나 다름없는 고행길을 다니고 있을 때 너무도 지치고 기력이 없어 대로변 나무 밑에 누워있을 때 따뜻한 음식으로 기갈을 면하게 해주었던 단정한 여인. 그러나 그가 힘겹게 사설호위무사로 들어간 고관대작의 암살범이 다름아닌 그 여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황감함. 그러면서도 정작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암살자인 그녀를 숨겨주고 부상까지 치료해주었던 일을. 겉으로는 "지난 날 한 걸식무사를 배불리 먹여준 은혜의 보답이라고 생각하시오, 하지만 다음엔...."이라며 다짐을 놓았지만. 사실,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음을 한참을 한했던 일.
그리고 서정에게 끝내 이야기할 수 없는 한 부분이 있었다.
서정이 태란황제 임요황을 이기면서 수카이배를 차지했던 때.
대광사는 우승 기념으로 각 문파를 초청, 거대한 축하연을 베풀었고 그때 수마지오 문파에 갓 입성했던 동강도 참석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동강은 지난 날 자신을 살리고 자신이 도와주었던 그리고 가끔 꿈에 나타나 새벽을 뒤집어버리게 했던 여인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도 반가웠고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던 동강은 그만 그녀가 서정과 함께 축하의 쌍무를 추는 것을 보며 콧물을 줄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본 엄비시의 무림평론가 이승원이 고물토수라는 별칭을 붙여주는 계기가 된다, 아울러 한동안 이승원은 크흐흥이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게 된다.)
분명 서정의 품에 안겨서 자신을 보았을 텐데도 그녀는 어떤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동강이라는 존재는 그녀에겐 낯선 존재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축하연이 파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 동강에게 그녀는 재빨리 다가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사라졌다. 말 한마디 걸어볼 틈도 주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동강은 그녀가 준 쪽지를 펴서 읽고 또 읽었다.

… 그때의 은공은 항상 골수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제 생을 맹세한 사람과의 자리였기에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랬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감사하며 앞으로 동강 강민이라는 이름을 기억에 남겨놓겠습니다    -벽소군-  …

그때 동강은 벽소군이라는 이름을 영혼에 박아놓았다, 그리고 서정 박정석은 그에게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 만나면서 대부분 승리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벽소군의 시선은 언제나 서정에게만 몰려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서정을 이기더라도 벽소군 앞에서는 동강은 언제나 패배자였다. 그리고 인연은 참으로 기묘하게 두 연적을 같은 소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여자를 울게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의 마음에 매어둔 사람, 비록 자신에겐 눈길 한번, 말 한번 와닿지 않은 먼 곳의 사람이더라도, 그 여자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일은 놓아둘 수는 없었다. 이미 자신이 몇 번이나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동강은 서정이 한없이 부러웠다. 세상을 가질 순 없을지 몰라도 동강이 볼때에는 세상보다 귀한 것을 그는 가졌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서정은 위험에 빠져 있었다. 동강에겐 하나의 치명적인 유혹일 수도 있었지만 이것저것을 따지기 전에  그저 그 여자를 울게하고 싶지 않다, 라는 자기최면 비슷한 것이 먼저 그를 움직이는 듯 싶었다.
잠시 담소를 나누던 서정이 조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드는 것을 지켜보던 동강은 불침번은 자신이 설터이니 쉬어 두라는 길섭의 청을 받고 밖으로 나섰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려던 동강은 문득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너를 만나면 이렇게 좋은데, 나를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뭔가 한가닥 걷어내지고 정신이 들기도 하는데. 너와 헤어지고 나면 나는 네가 꿈만 같구나. 어쩌다가 내가 너에게 희망을 가질까봐 두렵고. 어쩌다가 네가 내 마음 아프게 하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는지.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이런 것 뿐이라니. 답답하다.”<신경숙"깊은슬픔"에 나오는 부분, 제맘대로 편집;;;;;>
슬몃 젖은 동강의 눈에 달 속에 박힌 벽소군의 얼굴이 참으로 드물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난 날 서정의 품에 안겨 웃던 그 모습 그대로.

<내일이나 모레쯤;;;; 최종회가 올라옵니다>

동강의 테마곡

<차마> 성시경

저기 저 문을 닫아요 우리의 추억이 흩어져요
슬픈 눈 하지 말아요 또 다시 그댈 안고 싶어져요

이제 부질 없는 일이죠 내 마음 애써 추스려야죠
그대라도 내가 아끼는 그대라도
돌아서는 발걸음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입술을 깨물죠 또 발끝만 보죠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편한 표정 지으며 또 웃음 보이며 잘가라는 말 해줘야 하는데
입술만 떼어도 눈물부터 흘러와 떠나가는 맘 슬프게 할까봐
그대 사랑한다는 말 차마 하지 못했죠

시간은 흘러가겠죠 그렇게 사랑도 바래지겠죠
이별이 다 그런거죠 그래요 잠시만 아픈거애요

내 어깨의 작은 떨림도 입술 끝에 고이는 눈물도 괜찮아요
내가 슬픈 건 그대 모습 나의 앞에 두고도 할 말을 다 못하는거죠

입술을 깨물죠 또 발끝만 보죠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편한 표정 지으며 또 웃음 보이며 잘 가라는 말 해줘야 하는데
입술만 떼어도 눈물부터 흘러와 떠나가는 맘 슬프게 할까봐
그대 사랑한다는 말 차마 하지 못했죠

그대 기다릴거란 말 차마 하지 못했죠

1. 게으름과 예기치 않은 동생의 컴터점거로 하루 늦어짐을 사과드립니다.
2. 이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인물들과 상관관계가 없으며 혹시 있다면....전적으로 제 능력부족입니다;;;
3. 개인적인 목적이 있는 글인만큼 다른 곳으로의 퍼감은 일절!!!금지입니다;;;;
4. 이번 작품도 종극연생마인전처럼 흥행참패의 예감이 소록소록;;;;(빈티마케팅의 극치;;;;)
* 몽패랜덤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16 00:56)

04-08-06 15:15:13
  해원     04-08-06  
 헉.... ㅇ0ㅇ
그냥.. 드린 말씀이었는데... 민망 민망~ (으흘흘흘)
사가지(邪假只-다만 사악하고 거짓으로 뭉친)- 넘 웃겼어요.

정말 몽패님 글 보면 신기한게 그렇게 진지하고 감성이 극이 달했을 때도 어찌 그런 위트와 유머가 나오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 ㅇㅇb

그리고 -.-; 벽소군이 너무 예쁘고 ... 그래서...
저와는 전혀 다른 인물~ ㅜ0ㅜ...
점석아 넌 누구랑 노는 거야.. ㅜ_ㅜ

마지막으로 몽패님 짱 >ㅁ
  Real Corean     04-08-06  
 흥행참패라니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몽패님.
너무나도 재미나게 몽패님 글을 읽고 있는 애독자가 있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이렇게 재미난 글을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몽패님 화이링~~~!!  
  phoenix     04-08-09  
 몽패대사님.. 늦게 소감 올려서 죄송합니다.
너무 좋아요.. ^^  
  VIVID     04-08-11  
 성준묵과 김종아....씨..악역이네요. ㅎㅎㅎ
역시 온리 벽소군을 위한 드라마!!!

중간에 가슴이 찡해졌어요. 몽패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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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몽패랜덤   종극연생마인전(終極嚥生魔人傳) 최종회(완결)  [10]  2004/07/30 2770
60 몽패랜덤   종극연생마인전(終極嚥生魔人傳) 최종회 PART1  [8]  2004/07/30 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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