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phoenix 
  http://cyworld.nate.com/phoenix_legend
  For Myself
시간이 조금 생기면, 난 가끔 내가 봤던 만화를 다시 보곤 한다. 그런 만화는 주로 목차가 정해져 있고, 이미 수십번은 반복해서 봐서 한 장면을 보면 다음 장면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만큼의 수준이 된다. 슬램덩크도 그런 만화 중 하나이다.

슬램덩크. 다시 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만화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런면에서 슬램덩크는 내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구입한 만화책이고, 처음으로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본 만화이고, 처음으로 만화책을 보고 울어봤다. (그 후 내게 눈물을 뺀 만화책은 셀 수 없지만...) 슬램덩크에서는 수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는 인물은 없다.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서태웅이다. 지독하게 고집불통이지만, 지독하게 무뚝뚝하지만, 그 녀석의 투지가 좋다. 전국대회에서 산왕공고와의 경기에서, 슈퍼 에이스 정우성에게 지고 있을 때도 정우성이 거짓이 아니고 진짜였다며 웃던 모습. 지기 싫어하고, 목표한 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리는 모습. 그가 가지고 있는 치열한 모습이 난 좋다.

하지만, 이녀석만큼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둘이 있다. 상양의 김수겸, 해남의 신준섭. 혹자는 모두들 팀에서 에이스이고, 뛰어난 미남형 캐릭터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더라. 사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들은 에이스다. 하지만, 그들은 뒤에서(behind) 만족해야만 하는 비운의 캐릭터들이다.


















상양의 김수겸은 강호 상양에서 유일하게 1학년부터 스타팅 멤버로 출전한 선수이다. 전국대회에도 진출했었던 실력파이지만, 1학년때부터 해남의 이정환에 가려진 2인자였다.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경력도 갖추었지만, 우승경험은 없다. 그리고 도대회 4강 진출전에서 북산에게 패배하며 은퇴도 하지 않고 다시 농구공을 잡는다. 해남의 신준섭은 도대 득점왕이고 베스트 5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주장인 이정환의 그늘에 가리워진 에이스, 슈터일 뿐이다.

그들 앞에는 커다란 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그 벽의 뒤에서 서있어야 했다. 에이스라는 화려한 칭호에 가려진 2인자. 나는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난 그래서 그들이 좋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에게 천재란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다가갈래야 다가갈 수 없다.

난 어렸을 때는 굉장히 순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조그마한 일에도 금새 훌쩍 울어버리고,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내게 3일정도 고민하고 스스로를 다그쳐야 가능할 정도로 소심함의 극치였다. 게다가 하는 일들은 왜 그리도 서툴고 어설픈지. 난 어렸을 때 누구 한 명 안해본 적 없다는 그 흔한 반장이라는 것도 못해봤다. 난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남들보다 공부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를 가장 싫어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자신이었다. 난 이런 나의 모습이 지독하게 싫었다. 바보같아서 였을까... 아니면 다른 씩씩하고 활발한 아이들이 부러워서 였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어른들의 칭찬이나 또래 친구들의 시선이 부러워서 였을까...

그들과 나의 묘한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다그친다는 점일까. 전국대회 진출이 좌절되고 나서도 겨울선발을 위해 은퇴도 하지 않고 연습하는 김수겸이나, 입부 당시 센터였으나 비실거리는 몸에 포지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묵묵히 아웃사이드 슛을 연습했던 신준섭. 그들은 모두 가슴 깊은 곳에 투지를 간직하고 묵묵히 자신을 다그쳐왔을 것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눈물을 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 몰래 눈물을 참아내고자,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방에서 눈물 흘린 적도 많았다. 남들 앞에서 자신있게 행동하기 위해, 말하기 위해 속으로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웃는 모습과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가 알려고도 안하고 칭찬도 안해주는 일에 그리도 노력했다.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천재들은 게으른 녀석들은 없다. 천재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1인자다. 김수겸이나 신준섭에게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평생 앞서갈 수 없는 존재일련지도 모른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못하는 것도 많고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이 많다. 내가 한만큼 그들이 안하는 것은 아니니까.

삶은 어쩌면 치열하고 역전이 거듭되는 농구경기와 같을련지도 모르겠다. 난 거기에서 어떤 포지션일련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가 그들을 도우면서 혹은 그들이 나를 도우면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에 실제로 임하는 선수들 말고도, 벤치에 있는 사람들, 관중들까지도 모두 함께라는 것이지만 개인의 역할에 따른 내 몫을 단단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1인자의 뒤에 있는 존재라고 평가받을지라도, 적어도 나에게 그들은 최고이다. 많은 부분에서 치이고 버겁기 그지 없지만, 남들보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하지만, 그래도 큰 진전은 없지만,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해내고 인정받고 있는 그들은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말이다.......

이리도 지독하게 숨막혀오는 치열하기 그지 없는 경기에서
강렬한 슬램덩크도, 화려한 3점슛도 아닌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던지는 1점짜리 프리스로와 같을지라도......


* 해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6-29 15:59)

05-05-15 22:00:32
  루핑     05-05-16  
 세일러문, 웨딩피치, 그리고 최근에 방영하고 있는 베리베리 뮤우뮤우(-_-). 앞에 둘은 굉장히 좋아했던 만화였고, 베리베리는 최근에 열중하면서 보고 있는 만화입니다.
제가 저기서 역을 맡는다고 하면, 주저없이 주인공 역을 고르겠지요. 그러나 제가 저기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세일러마스, 데이지, 그리고 민트입니다. 그들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주조연급에 가까운 사람들이지요. 왠일인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는 정이 안가더군요. 제 자신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데 말이죠. 제 삶의 주체가 저고, 이끌어 가는것도 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지금의 저는 아직 주조연급밖에는 안되는것 같아요. 제 스스로의 의지가 발휘되지 않은 이상은 말이죠.


참고로 제가 제일 좋아했던, 아직도 가장 좋아하고 있는 만화는 '아기와' 나 입니다. 비록 저는 지금 이렇게 자라버렸지만 연재당시의 '나'인 진이와는 나이 뿐만 아니라 집안 사정도 비슷한 상황(편부모인점)이라 굉장히 몰입해서 봤었지요. 집에도 전권을 소장해 놓고 심심할때마다 꺼내보곤 해요. 진이의 현재 이야기를 보고 싶다... 하고 생각했는데 방금, 여자를 잘 알게된 진이의 모습따윈 보고 싶지 않네요 ㅠ_ㅠ  
  규망君     05-05-17  
 저도 슬램덩크 너무좋아해서.. 뭐 만화를 다 좋아하긴 하지만..
애장판으로 다시 사모았죠..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는 자체로..전 피닉스님이 멋져보입니다..!

(밥은 대체 언제쯤...? ㅋㅋ ^^;)  
  phoenix     05-05-17  
 밥은 요환이가 MSL 결승 진출하면???

방학 때 서울 올라가면 맛있는 것 사드릴께요. 장소 물색해주세용.. ^^  
  water ncw     05-05-17  
 제가 구슬 안에 머물면서 참 복이 많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좋은 글을 읽을 때 입니다.  
  거짓말     05-05-1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뜬금없지만 보고 싶어요 피닉스님.
(연락없다구 생각 안하는 건 아니에요. ㅠ_ㅠ)  
  로그너     05-05-26  
 글 잘읽었습니다. 피닉스님 ^^
슬램덩크 저도 만화책 봤다면 한? 만화책 본 사람인데 연재가 끝난지가 한참이 지난 후인데도 아직까지 제일 재밌게 본 만화 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민없이 바로 얘기합니다. 슬램덩크 라고..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가 없이 단순히 만화라고 치부할수 없을 만큼 열정과 감동이 묻어있는 만화책 인거 같습니다.

1인자가 아닐지라도 그들역시 다른면에선 1인자 입니다. ^^  
  kid     05-08-05  
 감독이라면 압니다.

그 프리스로 1 점의 가치를.....

오랫만입니다. 불사조님.. ^___________^  


 
  j000065   [공지]좋은 글 모음 게시판입니다.  [2]  2003/08/22 3101
89 규망君   골방  [8]  2005/05/10 2893
88 bohemian   [잡담]황제와 황제.  [4]  2006/01/24 2861
87 p.p   [잡담] 갈치 국  [7]  2005/11/23 2944
phoenix   For Myself  [7]  2005/05/15 3323
85 jjun01   [잡담] 결승전에 대한 작은 꿈  [9]  2005/06/18 2832
84 샤이닝토스   민의침묵  [12]  2005/02/14 2892
83 kid   [잡담] 버스안에서  [14]  2005/01/12 2669
82 연*^^*   waching game 3....천재와 노력  [7]  2005/01/23 2868
81 안개사용자   [낙서] 北豆, 홍칠콩  [15]  2004/11/10 3144
80 ijett   [카툰] 화두  [20]  2004/10/17 2949
79 bohemian   잃어버린 1년.  [11]  2004/10/15 3131
78 SujinBBa   [로마인과 스타이야기] 2. 한니발 vs 박성준 <정복자(Conqueror)>  [11]  2004/09/18 2824
77 거짓말   마법사가 되는 방법  [17]  2004/09/14 3006
76 연*^^*   watching game....외전2; 최강과 최고의 문제  [6]  2004/08/17 2773
 
   1 [2][3][4][5][6]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na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