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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h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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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황제와 황제.
- '황제'(皇帝)

굳이 이 말이 어떠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다, 유래가 어떻다는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저 '황제'라는 말 그 자체에서 뿜어져나오는 오오라는 대단하다.

그저 '강함'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에게나 어울릴 듯한 이 호칭을 특히 한국 사람들은 참 좋아하는 듯 하다.

한국인들이 자국인에게 '황제'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대략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누군가가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였다.

두 명의 황제 역시 그런 인물들이었다. 비록 30년 가까운 나이차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 54세의 '바둑황제'와 27세의 '테란의 황제'

바둑황제 조훈현. 테란의 황제 임요환. 이들이 '황제'로 불리우는 이유는 언뜻 보면 간단하다.

한 시대를 완전히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 기간의 짧고 김에 관계없이 그 시대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소불위의 최강으로 군림했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점만 가지고 조훈현과 임요환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것은 그들이 이루어온 업적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54세의 바둑황제와 딱 그 절반의 연령의 테란의 황제는 살아온 세대와 활동한 분야는 다르지만, 걸어온 길과 기질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 황제, 그들이 없었다면.

임요환의 군입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포스트-임요환의 스타크래프트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임요환이 가지고 있는 스타크래프트계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본인의 생각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애초에 임요환이라는 게이머가 없었더라도 피씨방 대회는 신나게 열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저런 매니아틱한 동호회와 더불어 pgr, yg클랜과 같은 게임 사이트도 여전히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요환이라는 아이콘이 가지는 힘을 능가하는, 혹은 이와 맞먹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게임계가 현재와 같은 위상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조훈현이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입국했던 것은 순전히 군입대 문제 때문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조훈현에게 군입영통지서가 날아들자 조훈현의 스승 세고에 겐사쿠와 조훈현의 후원자들이 백방으로 조훈현의 군면제를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힘든 일이었고, 결국 조훈현은 한창 잘 나가던 일본에서의 기사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조훈현 개인에게 마이너스로 생각되었던 이 사건은 한국바둑계 전체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경사로 기록될만한 일이었다. '전성기의 조훈현이 강한가, 혹은 이창호가 강한가?'라는 물음이야 답이 불가능한 질문이겠지만, '조훈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창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훈현의 라이벌 서봉수까지도 '나의 스승은 조훈현'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훈현의 제자인 이창호가 아니더라도 7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기사들이 조훈현의 바둑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아왔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전체 16명 참가인원 가운데 1명의 한국기사로서 출전해서 이뤄낸 1989년의 응창기배 우승은 이창호의 등장과 더불어 흔히 '잡기'로 인식되던 바둑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바둑붐을 일으켰던 결정적인 사건이었으며, 이 시기에 바둑을 배운 많은 어린이들이 이제는 이창호의 뒤를 이어 한국 바둑계의 기둥이 될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훈현이 없었더라면, 세계 최강의 한국바둑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황제는 '승부의 프로페셔널'.

'프로'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돈을 받고 무언가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오해하기를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 '프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과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노력을 투자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하는가의 문제는 별개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면 현재 프로게이머들 가운데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얼마나 될까?)

조남철, 김인 등 뛰어난 기재를 가진 한국 바둑 초창기의 고수들이 바둑계를 이끌 무렵, 1970년대 초까지의 한국바둑계의 기사(棋士)들은 말은 '프로'였지만 바둑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가기도 어려웠음을 물론, 시합 전날에도 운당여관 등 당시 관철동 한국기원 주변의 여관에서 밤새 술로 날을 지새고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대국에 임하기 일쑤였고, 제한시간 각각 5시간씩의 바둑을 한시간 내에 끝내버리는 속기의 명수들도 그들이 가진 '천재성'만으로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천상' 바둑인일 수는 있었을 지 모르겠지만 '프로' 棋士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바둑에 진정한 '프로'의 등장한 시점이라면 조훈현과 서봉수가 나타난 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승부사'로서의 기질이라면 애초에는 서봉수가 한발 앞섰다. 71년에 이미 '명인' 타이틀을 따냄으로서 주목받고 있던 서봉수는 군문제로 일본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한 조훈현이 자신을 능가하는 실력자이며, 장차 자신과 수없이 대결할 재목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짜장면 한그릇 짜리 내기바둑을 통해 조훈현이 가진 장점을 흡수하고 약점을 파악하는 가운데 조훈현과의 첫 공식 도전대국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3:1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조훈현과 서봉수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둑계를 양분하는 가운데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는 한국의 소위 '실전형 바둑'의 모태가 되어 이후 한국바둑의 세계제패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모양, 돌의 미학을 중시하고 우형을 꺼려하는 일본의 현대바둑의 특징과는 달리 이들은 승리를 위해서는 빈삼각에 1선과 2선도 마다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토록 긴 기간을 맞써 싸웠지만, 결국 목적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뿐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만은 끝까지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한번은 서봉수가 조훈현과의 7번기 도전 대국에서 백을 들었을 때 흉내바둑을 구사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때 '치사한 작전'이라고 비난을 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조훈현은 몇년전 세계대회 8강에서 뤄시허와 다진 바둑을 몇 군데 패싸움을 일으켜 1%에 불과한 승리의 가능성을 만들었고, 뤄시허는 귀신에 홀린듯 그 1%의 가능성으로 걸어들어가버렸다. 이에 대해서도 '깔끔히 던지지 않고 질질 끌어서 실수로 이겼다.'고 승리를 폄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이다. 그러나 서봉수는 이기기 위한 최고의 작전을, 스타크래프트로 말하면 최적화 빌드를 짜서 경기에 출전한 것이고, 조훈현은 1%의 가능성도 되지 않는 승리의 가능성을 1%로 극대화시켜 상대를 그 안으로 이끌어들인 것이다.

2000년이었는지 2001년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임요환은 겜큐의 모 리그에서 열린 김동수와의 대결에서(맵은 뉴리모트아웃포스트였던가..? 뭐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테란이 토스 이기기 참 뷁스런 맵이었다;) 본진 1배럭과 상대 입구 근처 몰래 2배럭 도합 3배럭 마린 scv러쉬로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임요환은 프로토스전에 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때라, 이러한 임요환의 승리를 두고 '정석 힘싸움은 자신이 없으니 치사한 수를 써서 이기려고 한다.'는 식의 말이 나오게 되었다. 지금이야 4드론을 하든 상대 본진 구석에 투배럭을 해서 벙커링을 해서 이기든 일꾼 올인 러쉬를 해서 이기든 그걸 두고 '재미없다'라는 말이 나올 망정 '치사하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에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얘기긴 하지만 어쨌든 임요환은 게임계 초창기의 다른 게이머들과는 승부욕과 게임에 대한 인식상의 많은 차이를 가진 선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임요환은 중요한 게임에 출전할 때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출전하는 법이 없었으며,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의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을 한 개 이상 치밀하게 준비해서 승부에 임하는, 승부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프로'였다.


- 황제의 몰락? 황제의 재림!

90년대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제자 이창호의 도전으로 90년대 후반에는 20여년 만에 무관으로 떨어지며 벼랑끝까지 내몰린 조훈현. 그리고 영광의 2001년의 끝에서 맞은 SKY2001 결승의 패배에 이은 부진과 이후 몇년간의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오가는 부진 속에 '먹튀'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임요환.

그러나 조훈현과 임요환의 특출난 승부사로서의 기질은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후배들의 도전 속에서도 그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천부적인 전투력과 수읽기 능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90년대 종반부터 호전적인 바둑을 의식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한 조훈현은 정상급 기사들과의 대국에서 평범한 집계산 바둑의 계가로 승부를 보려하지 않고 중후반 무렵 전판을 얽는 한판 승부를 통해 승리를 가져가는 바둑으로 99년의 세계대회인 춘란배 결승에서 이창호를 제압했고, 이후 몇 차례의 세계대회 결승에서도 우승하면서 50이 가까운 나이에 세계대회를 2연패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조훈현의 변신술을 '약점을 초과하는 장점의 극대화'라고 한다면 임요환의 변신은 '장점의 유지, 약점의 보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초반 전략으로 우위를 점하거나 소수 유닛 전투로 이득을 취하면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끄는 저그전에서의 경기 패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프로토스전에서의 생산력과 병력운용 능력 등의 약점을 같은 팀의 선수들의 경기스타일을 흡수함으로써 보완하여 양대 메이저에서의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훈현과 임요환의 승부욕이 단지 '지는 것을 분해하는' 오기에 그치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그냥 한시대를 빛냈던 사람으로 잊혀져갔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오기를 넘어 '승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줄 아는 이들이었기에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천부적 능력을 가진 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없다면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자신이 가진 한계에 스스로 봉착하여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훈현과 임요환이라는 두 명의 거목이 걸어온 길을 보면서 알 수 있다.


- 황제와 황제. 그 위대한 이름.

바둑황제와 테란의 황제. 그들은 최소한 그들의 분야에 있어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위대한 존재이며, 그들의 후배들이 바라보고 갈만한 roll-model로서 해야할 모든 것을 보여준 이들이다. 앞으로 어떤 기사가, 혹은 게이머가 이들을 능가하는(?) 업적을 쌓을지는 모르겠지만, 조훈현과 임요환이 받았던 '황제'라는 이름을 받을 사람은 바둑계에서든 스타크래프트계에서든 나타지 않을 것이다.

p.s. 조훈현과 임요환은 참 공통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면, 20년 동안 조훈현의 상대방을 응원해본 적이 없다는 점. 그리고 거진 6년간 임요환을 응원해본적이 전무하다는 점... 정도? 참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ㄲㄲ
* 해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5-12 02:56)

06-01-24 22:18:07
  거짓말     06-01-24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우리가 뭣땜에...^ ^;;)
한 사람의 임팬으로서도
또 다른 입장(?)으로서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대단하다고 말해줄 순 있지만
좋아하며 절대 마음에 들일 수 없는 무엇, 그 누군가,
그런 건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 또한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며 살겠죠.
하지만 한 가지!
오히려 마음에 너무 꾹꾹 담고 있어 그 자체가 너무 절절해서
저 자신은 언젠가부터 절대 쓰지 못해왔던
그에 대한
냉정한 글, 좋네요. ^ ^;;  
  물빛노을     06-01-25  
 응창기배가 녜웨이핑 9단의 옥쇄바둑을 이겼던 그 대회인가요? 기보는 대충 생각나는데 대회 이름이 아물아물해서리-_-a 생방으로 보진 못했지만 하도 유명해서 재방도 많고 ㅋ_ㅋ 여류바둑 최고수급이었던 녜웨이핑의 부인이 울먹이던 게 기억나네요.

저는 90년부터 91년 사이에 바둑에 미쳐있었죠. 어머니께서 강제로 시키는 피아노 학원을 제끼고 기원 가서 어른들 바둑두는 거 보고 그랬었습니다. 집에 할아버지가 가끔 장기두실 때 쓰시던 접이식 바둑판 겸 장기판(앞뒤로 그려진)이 있었는데, 각종 심부름값을 차근차근 모아 마침내 희고 검은 바둑돌 세트를 샀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디서 났냐는 어머니 말씀에 "내가 샀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었죠(나중에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어머니껜 꽤나 가슴아픈 일이었나 봅니다. 자식, 그냥 사달라하지 그걸 모아서 사냐고, 안쓰럽고 또 미안하고 그랬다고 하시더군요-_-;).

매일매일 신문에 나오는 기보를 보고 번호를 찾아가며 순서대로 두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조훈현 기사의 책들을 보며(하나는 '변의 갈라치기'인데 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안나네요. 이걸 훨씬 많이 봤는데... 바둑 입문책이 아니라 실전 이론서 같은 겁니다) 또 두고... 이런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아마 5단이 운영하는 근처 바둑교실에 보내주셨습니다. 첫날 신고식 삼아 그 바둑교실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초등학교 5학년 형과 둬서 이겼을 때의 환희와 보던 사람들의 경악은 제 마음속의 자랑으로 남아있습니다 ㅇㅇv
그런 저에게도 열등감의 대상이 있었으니, 당시 바둑교실 멤버중에 저보다 두살 어린 유인우라고 있었는데, 다섯살 때 3급을 따고 7살땐 사범(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마 5단)과 맞두던 무시무시한 녀석이었죠-_-; 그래도 서울시 어린이 바둑대회에선 녀석은 16강, 전 8강-_-v 우승자에게 차례로 떨어진 것이긴 하지만요;; 유치원도 안다니고 오직 바둑 특히 서봉수의 바둑에 미쳐있던 녀석인데, 지금은 어디서 뭘하는지 궁금하네요. 바둑기사의 길로 가진 않은 것 같은데.

그 시절 저의 영웅은 양재호였습니다(이름 아시는 분이 몇명이나 있을지... 이런 쪽에서도 2인자 근성이 발휘되었다고 봐야 하나...;). 양재호가 아마 4인방(조-이, 유창혁, 서봉수) 시대 혹은 그 이전의 마지막 타이틀홀더일 겁니다. 이것도 89년이었던 것 같은데... 제게 반감을 사던 당시의 '황제'는 조훈현이었기에 양재호가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이창호의 시대가 열리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창호의 팬으로 흡수되지만요.

조훈현의 바둑은 흔히 싸움닭 바둑이라고 하죠. 흔히들 그 승부근성과 위치 등등 때문에 임요환과 많이 비교합니다만, 플레이스타일상 가장 닮은 선수는 서지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서 거기서 조금씩 이익을 얻어내고, 국면 전체적으로는 두터움을 형성하는 한편으로 상대가 방심하는 순간 날카롭게 찔러들어가는 모습은 제겐 올림푸스배의 서지훈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지현     06-01-27  
 프로게이머 중에 정말 프로 다운 모습을 제일 잘 보여주는 선수는 임요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
임요환 선수 전성기때도 대단했지만 요즘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몇 년 사이에 몇 번이고 그렇게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또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마술사     06-02-03  
 저도 임요환황제시대에 스타를 볼 때면 '임요환 저렇게 하면 도대체 어떻게 이겨'...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지요. 그나마 코카콜라배때 홍진호와의 치열한 경기를 보고 '그래 이녀석이면 그나마 임요환한테 해볼만 하겠구나' 싶어서 홍진호팬까페에 가입했었고요. 지금은 운영자 까지 됐지만, 당시 생각이 떠오르니 저도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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